
[한국어린이교육신문 = 안창근 육아칼럼]
- 어느 아빠의 육아질문에서
"아이들이 왜 아빠 말을 들어야 합니까?"
"아빠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나요?"
우리 아빠들은 성장하면서 이런 부분을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예전 아버지들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경제적 책임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사실 아버지 역할은 거의 다 한 셈이었죠. 그러나 지금 세대의 아빠들은 그런 식으로는 역할을 다 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잘해주는 아빠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아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살고 계신 직장에 다니시는 보통의 아빠들을 필자는 항상 존경합니다. 현재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아빠들이 서로 너무나 공감하고 계실 겁니다.
그러면서도 퇴근 후 가정으로 돌아가면 집안일 잘 도와주고 다정다감하게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친절한 아빠가 되라고 사회에서는 묵시적 압박을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웃는 얼굴로 아빠를 맞아주는 집은 다행일 겁니다.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이들의 잠자는 모습만 본다든지, 엄마와 신나게 다른 놀이를 하던 중이라 한 번 쓱 보고 다시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빠들은 예전의 가부장적인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 세대의 아빠들은 예전세대 아버지들보다는 훨씬 아이들과 가까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빠들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일부분인 것처럼 생각하며, '너희들은 엄마, 아빠 말만 잘 들으면 돼'와 같은 수동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양육태도는 정말 위험합니다.
특히 엄마들보다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빠들은 아이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보다 엄마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제1양육자는 보통 엄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엄마가 아이와 접하는 시간이 가장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존재와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저녁에 잠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굉장한 자랑거리로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언의 인정을 요구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아빠지?' 라면서요. 물론 아빠들이 많은 시간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준다면 너무나도 좋습니다. 요즘은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도 많지만, 이 또한 살짝 사회적 걱정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1년만 키우는 것이 아닌데, 단순히 아이를 양육할 사람으로서 아빠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현실적으로는 아빠는 1년의 육아휴직 중 절반 정도는 주 양육자의 교체에 따른 혼란기에 있어야 하며, 육아휴직 종료 후 아이가 받을 상실감에 대한 부분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는 아빠의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적어도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 만큼은요.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아빠 본인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아이의 이야기는 틀렸다고 한다면 아이는 아빠가 필요한 존재로 생각할까요?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내용이 담긴 동시가 있었죠. 아마 그 동시를 쓴 아이는 과연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필자가 부모교육 강의에서 자주 하는 소리 중 하나가 '아빠들은 머릿속에서 또 다른 아이를 하나씩 더 키운다' 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아빠들은 보통 회사 책상 한쪽에 활짝 웃는 아이 사진 하나 정도는 세워놓고 있습니다. 혹은 스마트폰 배경화면 정도에라도. 그 사진 속의 아이는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아빠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진을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아이와 많은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사이좋은 부자, 부녀사이였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사진 속의 웃는 아이는 없어지고, 울면서 떼쓰고, 자기 이야기만 고집하는 현실의 아이가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빠들은 이 부분에서 많이 좌절하고 양육 자체를 엄마에게 맡겨버립니다.
사진 속의 활짝 웃고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라, 떼쓰고, 고집 피우는 현실의 아이와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빠들은 현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을 하기보다는 먼저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허무맹랑한 엉뚱한 말이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하는 순간에는 진지하고, 그 말을 경청하는 아빠에게서 '라포르(rapport. 상호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아빠는 '아니'가 아니라 '그래' 나 적어도 '같이 생각해보자', '좀 더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라는 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빠와 아이의 이야기가 좀 더 이어지고 아이는 제 생각을 전달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의 기준으로 이야기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는 이제 세상의 질서를 알아가는 '어린 사람'입니다. 조금은 서툴지만 자신만의 정서가 있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엄마들이 '안 돼'를 자주 말한다면, 아빠들은 더욱 '그래, 좀 더 이야기해보자'를 말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빠와의 대화의 기억을 남겨줬으면 합니다.